며칠 전 주말에 올린 글(https://medium.com/@unifiedh/%EC%99%9C-%EC%9D%B8%ED%84%B0%EB%84%B7%EC%9D%80-%EA%B7%BC%EB%B3%B8%EB%B6%80%ED%84%B0-%EA%B8%80%EB%9F%AC%EB%A8%B9%EC%97%88%EB%8A%94%EA%B0%80-%EC%BD%94%EB%A1%9C%EB%82%9819%EC%99%80-%ED%95%9C%EA%B5%AD-%EC%9D%B8%ED%84%B0%EB%84%B7%EC%9D%98-%ED%95%B4%EC%99%B8%EC%A0%91%EC%86%8D-%EC%9E%A5%EC%95%A0-%EA%B7%B8%EB%A6%AC%EA%B3%A0-%EB%84%B7%ED%94%8C%EB%A6%AD%EC%8A%A4-%EC%A0%84%EC%9F%81%EC%97%90-%EA%B4%80%ED%95%9C-%EC%9D%B4%EC%95%BC%EA%B8%B0-ae27826e7fc8)이 상상 이상으로 공유를 많이 타면서, 여러 채널을 통해 피드백이나 반대 의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먼저 제 미디엄이나 페이스북, 개인 블로그 등은 개인적으로 남는 시간에 취미로 빠르게 (일반적으로 총합 3시간 이내) 글을 쓰는 공간인지라, 언급된 모든 사실들에 대하여 엄격한 팩트체크를 거치지는 않습니다. 이번 망중립성 관련 글의 경우에도 3일에 거쳐 총합 2시간 반 정도의 시간만을 할애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따라서 제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들이 필터링 없이 서술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관련하여 건설적인 피드백이나 오류 지적은 감사히 수용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바로 수정하고 있습니다만 무분별한 인신공격 등은 자제하여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풀타임으로 글을 쓰는 기자나 연구원이 아니며, 아무리 길어봤자 최대 3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는 제 모든 블로그 글에 언급된 모든 사실들에 대한 엄격한 팩트체크, 레퍼런싱 및 다른 의견에 대한 논리적 반박과 근거 제시를 요구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기사나 논문과 같이 사실적 엄밀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대부분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며, 그 파급력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경우이기 때문에 문제가 크게 불거질 수 있습니다만, 개인이 취미로 블로그에 쓰는 글은 취미로 가볍게 쓰는 것일 뿐더러 그 파급력을 전혀 예상할 수 없고, 더욱이 엄밀성을 맞추기 위해 리서치 등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사실적 엄밀성을 갖추기에는 여건상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만, 제 페이스북 계정의 공개 글을 팔로잉하는 분들의 수나, 파급력이 있는 글들의 평균적인 공유나 트위터, 페이스북, 이메일 등으로 받는 덧글/피드백의 수 등을 감안했을 때, 예전처럼 더 이상 가볍게 글을 작성해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기사나 논문 등의 사실적 엄밀성에는 미치지 못하겠으나, 미디엄 등의 매체에서 글 작성 시 최소한의 레퍼런싱 정도는 해 두고 잘못된 내용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피드백의 수가 너무 많아 모두 답장해 드리지는 못합니다만, 명백하게 잘못되었거나 중복된 의견이 많았던 몇 가지만 추려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글 원문에도 반영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1. 서킷망이나 패킷망이나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서킷망의 모든 연결에 대하여 물리적인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못된 서술이었습니다. 본래는 “서킷망에서는 단일의 통신 세션이 구축되어야 하나 패킷망에서는 그렇지 않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독자층을 고려해 일부 표현을 다듬는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틀린 서술이 사용되었습니다.
서킷망과 패킷망 모두 목적지까지 물리적인 연결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패킷망의 경우, 패킷별로 목적지까지의 경로가 달라져도 무방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의 경로에만 의존하는 서킷망의 경우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2. 거리가 멀어지면 통신 장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도 서킷망이나 패킷망이나 같다. 서킷망이라고 항상 상대국과 직접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이고 역시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일부 틀린 서술이 사용되었습니다만, 같은 물리적 회선이라도 로스나 드랍의 리스크가 서킷망보다는 패킷망에서 훨씬 낮으며 따라서 확장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패킷망 또한 hop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불리하지만, 서킷망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통신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기술적인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상기 두 사항은 오늘 중 표현을 다듬을 예정입니다.
3. ARPANET은 핵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핵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패킷망이 개발되었다는 근거를 대라.
이에 관련해서는 당시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여러 진술이 교차하기 때문에 어느 측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당 사실은 타임지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당시 책임자들의 진술이 이를 뒷받침하면서 (https://www.washingtonpost.com/sf/business/2015/05/30/net-of-insecurity-part-1)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정작 일부 연구원들은 그런 군사적 목적은 전혀 없었으며, 단순히 컴퓨터들 간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학술적 목적 및 호기심으로 개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진술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명백하게 가리기는 어려울 것 같으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애초에 DARP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대응하여 “우리도 과학기술 과시 좀 해야하지 않겠냐”는 동기로, “미국 국방부” 산하에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미국 국방부 산하에 만들어진 조직이, 아무런 군사적인 목적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어떤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하게 들립니다. 물론 연구책임자나 개발자, 엔지니어, 실무자 등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동기는 순수했을 수 있겠으나, 윗사람들의 동기까지 완전히 군사적인 목적이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 듯합니다.
4. 왜 ISP를 절대악으로 묘사하냐. 애초에 집에서부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물리적으로 망 깔아준 게 누군데, 왜 감사한 줄 모르고 공격하냐.
절대악으로 묘사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ISP는 본질적으로 이익을 좇는 기업입니다. 세계 각국의 ISP들은 본래 공영/국영이었던 것이 시장경쟁 촉진을 위해 민영화된 경우가 상당히 많고 (한국 포함), 따라서 이들이 깔아둔 초기 네트워킹 인프라는 국가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순수한 민간자본으로 통신 인프라를 깐 ISP라고 해도 이는 기업의 이익을 위한 행위(투자)였을 뿐, 특별히 “감사해야” 할 행위는 아닌 듯 싶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일부 소수 공룡들에게 독점되어 인터넷의 기본 원칙을 흔들기 시작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 환경이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ISP뿐만 아니라 CP들, 즉 구글과 페이스북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독점 행위에 대해서도 이전에 몇 번 비판했던 바 있습니다). ISP에 특별히 공격적인 게 아니고, 평등한 네트워크여야 할 인터넷이 점점 인트라넷화되고 독점화되어 가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 것일 뿐입니다.
5.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ISP — CDN — CP 간 유상 정산이 이루어진다.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못하고 일방적으로 CP 측 요구만 들어줘야 하나? 한국을 호구로 봐서밖에라고 설명이 안되는 것 아닌가?
한국을 호구로 봐서가 아니라, (i) 순수하게 CP 때문에 망 품질이 나빠졌다고 보기 어렵고, (ii) 유상정산을 하면서 트래픽을 교환할 정도로의 트래픽이 발생하지 않으며, (iii) 그만큼의 영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 스스로 인터넷 강국이라 자부하지만 한국 인터넷의 실제 체감 접속속도나 품질은 절대 상위권이 아니었습니다. 망이 촘촘하게 깔려 물리적인 대역폭이나 망 품질 자체는 최상위권이 맞으나, 실제 서비스 품질을 보면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닙니다. 정부에서 자유롭게 트래픽 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망별로 티어를 나눠 규제로 조여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발생하는 트래픽이 모자라기 때문에, 한국의 ISP 중 해외망에서 100% 무정산 피어링이 가능한 곳은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좀 다릅니다. “티어1”급 ISP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곳이 이 두 지역입니다. 인터넷 전체를 “원칙상”으로는 무정산으로 접근할 수 있으나, 특정 기업의 서비스가 자사의 망 품질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망사용료를 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언급했듯 이는 본질적으로 ISP가 인터넷에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구가 많은 큰 시장이거나 피어링을 많이 하고 있을수록 상대적으로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ISP의 권력이 그만큼 세계적으로 커집니다. CP 입장에서 이런 큰 시장을 놓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뿐 아니라, 이런 대형 ISP에 밉보이면 접속 품질까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깨갱하고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겁니다.
한국의 ISP에는 이런 권력이 없습니다. ISP에 밉보여도 라우팅이나 피어링에 별로 큰 영향이 가지도 않습니다. 법으로 강제해도 망사용료 내기 싫으면 발 빼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 정부에서 K-넷플릭스라도 만들어야 하나요?
또한 넷플릭스 또한 절대로 망중립성의 강력한 옹호자는 아니었고, 자사의 이익에 맞춰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모였습니다. 실제로 2017년 미국에서 망중립성이 폐기되었을 때, 넷플릭스는 과거의 입장과는 정반대로 “망중립성이 폐기되어도 상관없다”는 의외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https://www.theverge.com/2017/3/20/14960154/netflix-net-neutrality-stances-timeline). 이는 과거에는 망중립성이 폐기될 경우 넷플릭스가 라우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피해를 볼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으나, 현재는 넷플릭스 AS 자체도 많은 ISP들과 피어링을 하고 있으며 넷플릭스를 라우팅 우선순위에서 빼버릴 경우 ISP만 손해를 볼 정도로 충분한 시장 점유율을 가져왔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 겁니다. 거기다 이렇게 되면 잠재적인 경쟁자인 새로운 스타트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는 효과까지 있으니, 굳이 목소리를 내서 망중립성 폐기를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이건 “왜 다른 나라에서는 망사용료 내는데 왜 우리한테만 안 내느냐”는 화풀이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의 권력화와 중앙화가 이 정도로 심각해졌구나”라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목소리를 안 내는 게 아니라 권력구조상 못 내는 겁니다. 거기다 힘도 없는 시장에서 망사용료는 뭐가 이렇게 비싸고, 그 돈 받아서 망 개선에는 투입 안하고 대체 어디다 쓴 건지. 갑질하는 넷플릭스에 맞설 수 있는 아무런 전략적인 무기도 없으면서 법으로만 윽박지르면 손해보는 건 자국민 소비자들밖에 없습니다.
6. 상호 무정산 원칙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용한 만큼 돈을 지불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나?
사실 기성적인 시장논리로만 보면 무정산 피어링은 말이 안 되는 원칙입니다. 전기도, 수도도, 대중교통도, 병원도 사용한 만큼 돈을 내는데, 여기는 서로 합의만 하면 실제 사용량과는 관계없이 서로 돈을 안 받는답니다. 8차선 도로 양쪽으로 똑같이 깔아놓고 서로 돈을 안 받기로 했는데, 한쪽 도로로만 차가 몰리고 다른 쪽에는 통행량이 없다면 언뜻 이상한 논리로 보일 수 있습니다. 권력자에 의해 남용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기성적인 상식으로 말이 안 돼 보인다고 이걸 종량제로 바꿨다가 어떤 일이 터졌는지는 이미 본문에서 상세히 설명했고, 왜 망종량제가 성립할 수 없는지도 이미 충분히 서술했습니다. 인터넷은 패킷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구조상, 종량제를 적용하면 데이터가 통할 수 있는 길만 막힙니다. 지구 반 바퀴씩 돌아가도 아무 말도 못합니다. 중간에서 통행세만 더 걷어가서 품질은 나빠지는데 사용료는 올라갑니다.
더욱이 인터넷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닙니다. 이미 인터넷 연결 없이는 일상생활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연락도 안 되고, 일도 안 되고, 더욱이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없는 집은 혼자 전염병의 위협을 무릅쓰고 무료 와이파이 찾으러 다녀야 합니다. 사실상의 공공재가 되어버린 것을 시장경쟁을 노리고 민영화를 시켰으면, 규제기관에서 해야 할 일은 그 경쟁을 촉진시키는 일이지, 시장구도를 고착화시켜서 가격을 올라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종량제 도입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쪽이 어디일지를 잘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